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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원 제192차 국민강좌 안내 2019.07.03  조회: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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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안내] 

일시 : 201979일 화요일 오후 630~ 오후 830

장소 : 서울 시민청(B2) 태평홀

강사 : 고예준 이사 (한국의 정신과 문화 알리기회)

강의주제: [우리 문화유산 속에 첨단과학 이야기]

찾아오시는 길: 1호선 시청역 4, 5번 출구

참가비 : 무료

문의전화 : 02-722-1785, 010-7299-6043 

 

               내가 몰랐던 대한민국
          우리문화 유산 속 첨단과학 이야기 강의안


1. 다뉴세문경

                                
내용 : 2400년 전의 나노기술. 현재 숭실대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국보 141호 다뉴세문경은 2400년 전 제작된 고조선의 청동거울로 1960년대 논산에서 발굴되었다.

 

지름 21.2cm의 작은 원 안에 무려 1만 3천개가 넘는 정교한 선과 동심원이 새겨져 있고, 선과 선 사이의 간격은 0.3mm에 불과하다. 1밀리미터 안에 머리카락 굵기의 선 3개를 새겨 넣은 것과 같은 작업이다.

 

확대경이나 초정밀 제도기구가 없던 시대에, 이처럼 뛰어난 청동 주조물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고대부터 이 땅에 세계 절정의 초정밀 금속 주조기술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문화재이다.

 

2. 성덕대왕신종

국보 29호인 성덕대왕신종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으로 꼽힌다. 일찍이 이 종을 본 일본학자 야나기 무네요시는 “아마 미에 있어서 동양무비(東洋無比)의 종일 것”이라고 표현했고, 수십 년 전 신종이 전시되어 있는 국립경주박물관을 방문한 독일 국립박물관의 큄멜 박사는 신종에 관한 박물관 설명서에 ‘조선 제일’이라고 쓰인 것을 ‘세계 제일’로 고쳐 쓰면서 “이는 실로 세계 제일로 말할 것이지 조선 제일이라 할 것이 아니다.

 

독일이면 이 하나만으로도 훌륭한 박물관 하나가 설 수 있다.”고 할 정도였다. 성덕대왕신종의 높이는 3.75m, 무게는 중형차 12대 무게와 맞먹는 18.9톤에 달한다. 놀라운 점은 직경 8.5cm의 쇠막대기가 18.9톤짜리의 종을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1975년 옛 경주박물관에서 현재의 박물관으로 종을 옮기면서 종을 거는데 쓰던 낡은 쇠막대를 포항제철에 의뢰해 새 것으로 교체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현대 기술로 새로 만든 쇠막대들은 신종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모두 휘어지고 말았다. 비파괴검사를 해본 결과 신종의 쇠막대는 여러 금속을 합금해 얇은 종잇장처럼 돌돌 말아가며 두들겨 만든 것으로 드러났다. 쇠가 강하기만 하면 부러지고 유연하기만 하면 휘기 때문에 강하면서도 유연한 것을 합금과 단조로 절묘하게 조절한 것이다.

 

현재에도 이 막대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성덕대왕신종은 새겨진 비천상의 아름다움으로도 유명하지만, 무엇보다 종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소리에서 세상의 모든 종을 압도한다. 일본의 범종학자 쓰보이 료헤이(坪井良平)에 의하면 일본 NHK 방송국에서 세계적인 명종들의 종소리를 모두 녹음하여 일종의 종소리 경연대회를 연 일이 있었는데, 성덕대왕신종의 종소리가 단연 으뜸이었다고 한다. 신종의 정상부에는 다른 나라의 종에서는 볼 수 없는 음관이라 불리는 원통 모양의 관이 솟아올라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서울대 엄영하 교수는 모형실험을 통해 음관이 음향학적 여과장치(acoustic filter) 역할을 한다는 것을 증명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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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 교수는 종을 칠 때 외부 진동은 멀리 잘 전파되지만, 종 내부에서 일어나는 진동은 안에서 서로 충돌하거나 반사하여 잡음이 나게 되는데, 종 상부의 음관은 이러한 잡음을 뽑아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 다른 한국 종의 특징은 명동이다.

 

서양의 종들은 높은 종각에 종을 매달아 종 내부 한가운데 매달린 추를 이용해 종의 내벽을 쳐서 소리를 낸다. 반면 한국의 종은 땅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높이에 종을 매달고 종목으로 종의 외벽을 쳐서 소리를 낸다. 이 때 종 아래 지면에는 바닥이 우묵 패어 있어서 공명동(共鳴胴)의 역할을 하여, 음량을 극대화 시킨 다. 조용한 한 밤중에 신종을 타종하면 60km 떨어진 곳에서도 그 소리가 들린다.

 

또한 신종은 물리학에서 ‘맥놀이(beats)’라 불리는, 반복적으로 커졌다 잦아들었다 다시 커졌다 잦아드는 신비롭고 깊은 여음을 만들어낸다. 종의 몸체에는 종이 만들어진 내력과 제작과정에 대해 기록한 총 1,037자의 명문이 정연하게 새겨져있다. 대개 이 시대의 청동유물의 명문은 음각으로 주조하는 것이 보통이다. 음각보다 양각으로 새기는 것이 아름답지만 제작과정이 훨씬 까다롭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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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신종에는 일천 자가 넘는 긴 글이 한 자 한 자가 또박또박 도드라지게 주조되어 있다. 여기에 먹을 묻혀 종이에 찍어내면, 이것이 바로 금속활자 인쇄이다. 이러한 뛰어난 금속주조기술이 한국이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하여 사용하는 원천이 된 것이다.

 

3. 팔만대장경


고려대장경은 몽고군이 고려에 침입했을 때, 적병을 불법의 가피력으로 퇴치하려는 신앙심의 발로로 16년에 걸쳐 만들어졌다. 그리하여 1251년에 완성된 고려대장경의 목판은 8만 1,258장에 달하며 무게는 무려 280톤이다. 대장경 8만 1,258장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면 그 높이는 3200m로, 미국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8배 높이이다.

 

여기에 새겨져 있는 글자 수는 약 5200만 자인데, 하루에 4~5천자씩 읽는다고 할 때 전체를 다 읽는데 30년이라는 세월이 걸린다. 실로 대장경은 어마어마한 불사였다. 대장경을 만들기 위한 준비 작업으로 먼저 50~60년 자란 나무를 베어 준비하고, 변형과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원을 3년 동안 바닷물에 담가 나무의 진을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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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년이 지나면 바닷물에서 꺼내어 나무를 일정한 크기로 자른 후에 다시 소금물이 담긴 통에 넣어 끓였다. 소금물 처리는 벌레나 곰팡이 서식을 막고 판자내의 수분 분포를 균일하게 하여 뒤틀림이나 갈라짐을 방지한다. 그 다음에는 이 나무판들을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서 3년 동안 말렸으며, 말린 후에는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는 공정을 거쳤다.

 

이렇게 준비된 경판에 드디어 판각수들이 대장경을 새기기 시작했다. 글자를 새기는 과정은 그야말로 지극 정성의 발현 그 자체였다. 1자 3배. 글자 한 자를 새길 때마다 세 번 씩 절을 하면서 정성을 다했기에 그 천문학적 숫자에 달하는 경판의 글자에는 오자나 탈자가 별로 없다고 한다. 이것은 세계 인쇄사에 전무후무한 기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글자를 다 새긴 경판에는 옻칠을 했는데, 옻칠은 충해를 방지할 뿐만 아니라 방수가 뛰어나고 화학적인 내성도 강하다. 특히 나무와 친화력이 높아서 경판 보호에 큰 역할을 했다.
 마지막으로 경판의 양 끝이 뒤틀리지 않게 각목을 붙이고 네 모서리는 구리로 장식했다. 그 구리 장식은 순도 99.6퍼센트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져 학자들을 놀라게 했다.

 

13세기에 그렇듯 순도 높은 구리를 정련하는 기술이 개발되었다는 것이 세계 과학기술사에서 지금까지 알려진 일이 없기 때문이다. 구리판을 고정하는데 쓴 수백만 개의 못도 순도 94.5~96.8퍼센트의 단조 된 제품이다. 저탄소강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못들은 철의 가공성을 좋게 하기 위해 0.33~0.38퍼센트의 망간을 함유했으며, 현재까지도 녹이 슨 못은 거의 없다.

 

 장경각의 친환경 보존과학해인사 장경각은 고려대장경을 보관하기 위해 지은 건물로, 세계에서 유일한 것인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큰 목조 창고건물이다. 고려대장경 경판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고 경판을 보호하고 있는 장경각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장경각은 고도의 과학적 설계에 따라 지어졌는데, 통풍은 최대한 잘되게 하고, 습도는 적게, 온도는 적당하게 유지해서 대장경이 오랜 세월 동안 잘 보존되도록 설계한 것이다. 1996년 마무리된 실험고고학적 조사연구에 의하면 장경각은 365평의 대형 목조 건물이고 또 히터나 에어컨과 같은 별도의 온도조절 장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건물 안의 온도 분포는 대체로 2℃ 이내로 놀라울 정도의 균일함을 나타냈고, 일교차가 10℃ 이상으로 벌어질 때도 건물 내부의 일교차는 보통 5℃를 넘지 않았다.

 

오늘날 최첨단의 과학기술을 동원해 다시 짓는다 하더라도 더 설계를 바꿀 필요가 없을 만큼 보존관리기능이 완벽한 건물이다. 화강암 초석 위에 지은 장경각에는 수직창살로 만든 나무 창 이외에는 별 다른 장치가 없어 보이는데, 대장경을 잘 보존할 수 있게 한 비밀은 바로 이 나무 창문에 있다.

 

장경각에서 수다라전이라 불리는 남쪽 건물의 경우, 앞 벽 아래 창문은 윗 창문의 4배가 되고, 뒷벽 위 창문은 아래 창문보다 약 1.5배 크다. 그리고 법보전이라는 북쪽 건물의 경우, 앞 벽 아래 창문이 위 창문보다 약 4.6배 크며, 뒷벽 윗 창문은 아래 창문보다 약 1.5배 크다. 이러한 창문 설계는 유체역학과 공기 흐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장경각을 지었다는 것을 증명해 주며, 이러한 창문 설계 때문에 자연 통풍의 극대화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즉 신선한 공기는 크기가 더 큰 창문을 통해 들어오게 되고, 건물 안으로 들어온 많은 양의 신선한 공기는 반대쪽 창문으로 빠져나가기 전에 충분히 순환하게 된다. 또한 장경각의 수다라전과 법보전은 흙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바닥에도 흙을 발라놓았는데, 이는 무더운 여름에는 온도를 낮게 유지하고 습도를 자연적으로 조절해 주는 역할을 한다.

 

장경각 바닥에는 숯과 소금과 석회가 층층이 깔려 있는데, 이것은 무더운 여름 장마철에는 과도한 습기를 흡수하고, 건조한 겨울에는 적정 수준의 습기를 유지하도록 돕는다. 또한 경판도 글씨를 새긴 부분보다 손잡이 역할을 하는 마구리 부분이 두껍게 되어있어 경판을 진열했을 때도 자연스럽게 공기의 흐름이 일어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처럼 장경각에는 현대적인 기술과학을 능가하는 지혜가 담겨있다. 1960년대에 당시의 최신 시설을 갖춘 시멘트로 지은 새 경판고를 해인사 동쪽 계곡에 건립했다. 그런데 시험 삼아 그 곳에 옮긴 경판에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곰팡이가 자랐고, 국보를 현대 기술을 동원해 ‘과학적’으로 보존하려 했던 야심찬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현재 이 건물은 스님들의 선방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대장경은 그대로 장경각에 보관되고 있다.

 

4.고려청자


도자기는 도기와 자기를 합하여 부르는 말인데, 500도부터 1,100도 이하에서 구워지는 도기는 비교적 만들기 쉬어 세계 여러 나라에서 만들어 사용했다. 그런데 가마의 온도를 1,300도로 올려 24시간 상 유지시켜 주면, 도기보다 훨씬 가볍고 단단하며 맑은 색을 가진 도자가 된다. 고도의 가마 운영 기술, 높은 온도에서도 녹지 않는 흙(자토)과 유약, 그리고 그것을 조절할 수 있는 장인의 축적된 경험, 이 모든 것이 갖추어졌을 때 비로소 자기가 탄생한다.

 

10세기부터 16세기까지 약 700년 동안 이렇게 자기를 만드는 기술을 보유하고 사용한 나라는 전 세계에서 오직 중국과 한국, 두 나라뿐이었다. 일본은 임진왜란을 일으켜 천 명이 넘는 조선의 장인들을 데려가 17세기부터 자기를 만들기 시작했고, 유럽은 한 세기 더 늦은 18세기부터 자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자기를 뜻하는 영어 단어가 차이나(China)일 정도로 중국은 자기 기술의 종주국으로 오랜 세월 유럽과 중동 왕실에서 중국 자기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런 중국 자기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는 자기를 만든 나라가 바로 고려다. 영국의 저명한 도자기 전문가 윌리엄 허니(W. B.Honey)는 고려와 조선의 자기를 일컬어 “세계 도자기 중에서 가장 우아하고 진실하며, 도자기가 갖는 모든 장점을 구비하고 있다”고 극찬했다.

 

중국에서도 고려청자를 최고로 평가하였는데, 송나라의 태평노인(太平老人)은 『수중금(袖中錦)』이란 책에서 천하제일의 것을 쭉 열거하는 가운데 “고려 비색(청자)이 천하제일이다(天下第一高麗翡色)”라고 단언했을 정도이다. 중국 청자는 유약을 두껍게 발라 청자의 푸른색을 만들었는데, 때문에 중후해 보이지만 투명하지 않다.

 

예를 들어 중국 청자 중 최고로 평가 받는 용천청자를 보면 두껍고 불투명한 유약 때문에 손잡이의 용무늬가 잘 드러나지 못하고 있다. 반면 고려청자는 유약을 얇게 발라 유약과 그 밑의 재료가 되는 흙의 빛깔이 어우러져 비갠 후의 하늘같은 맑은 비색을 탄생시켰다. 물이 맑으면 그 속이 훤히 보이듯 다양한 문양 또한 그대로 섬세하게 드러난다.

 

세계 도자기 역사 속 가장 화려한 꽃을 피운 고려의 청자는 은은하고 맑은 비색, 유려한 선의 흐름, 생동감 넘치는 형태, 회화적인 문양으로 세계적 찬사를 받고 있다. 여기에 더해 상감문양기법(상감청자)과 붉은 색을 내는 구리의 발색 기법(진사청자)은 고려가 창안한 세계 최초의 기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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